우리나라의 젊은 화이트 해커(해킹 범죄를 막는 보안 전문가)들이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제24회 데프콘(DEFCON)'에서 세계 3위를 차지했다. 4000여 해킹팀이 경쟁하는 이 대회는 '세계 해킹 올림픽'으로 불린다. 컴퓨터 천재들의 두뇌 전쟁터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국가별 해킹전(戰) 수행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작년에 우리 팀은 이 대회에서 '깜짝 우승'했다. 세계 해커들 커뮤니티에서는 '한국이 정말 세진 거 맞느냐'는 논란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와 관련 부처에서는 "우리도 보안 강국"이라고 자랑했다.
지난 7일(현지 시각) 저녁 최종 순위가 발표되자 2연패를 놓친 한국팀 'DEF KOR'의 팀원 10명은 고개를 떨궜다고 한다. 그때 한국에서 국제전화 한 통이 왔다. 정부의 관계자가 "패인(敗因)을 분석해 보고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올림픽에서 동메달 받은 선수에게 정부 관계자가 "왜 졌느냐"고 물은 셈이다. 3위가 패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승 못 한 이유는 있다. 현장 관계자는 "두뇌 전쟁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팀의 약점은 체력이었다"고 했다.
데프콘은 사이버 전쟁 방식으로 진행된다. 팀별로 서버(대형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배정받아 상대 시스템을 찾아 공격·방어한다. 2박 3일 동안 밤낮없이 이뤄진다. 낮에는 직접 공격, 밤에는 시스템 분석을 한다. 전투 현장에는 9명만 투입된다. 하지만 후방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지원하는 인원은 제한이 없다. 현실에서 해킹전이 벌어졌을 때 인원 제한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게 한국 팀의 발목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