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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정지훈 칼럼] 막내 울보→월드 클래스, 손흥민은 이미 레전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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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30 16:46:40 (2020-10-30 16:47:26)
[인터풋볼] 정지훈 기자= 대표팀의 막내에서 이제는 진정한 월드클래스로 거듭났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 선두를 달리며 월드클래스 공격수로 평가받고 있는 손흥민은 매년 진화하고 있다.
# '아버지이자 스승' 손웅정의 열린 교육 속에서 성장한 손흥민
손흥민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바로 '아버지' 손웅정이다. 어쩌면 아버지라는 표현보다는 축구 인생에 있어서 스승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은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났지만 축구 선수를 위해 춘천으로 건너갔고,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 축구 명문이었던 명지대학교에 진학해 좋은 활약을 펼쳤다. 이후 상무, 울산 현대, 일화 천마에서 활약하며 프로로 뛰었고, 올림픽 대표로도 발탁됐지만 고질적인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손웅정은 스페인, 독일, 브라질 등 축구 선진국을 돌아다니면서 선진 유스 시스템을 접했고, 그동안 자신이 배웠던 축구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돌아왔다. 결국 춘천시에서 유소년 팀을 만들어 '열린 교육', '즐기는 축구'를 모토로 후배들 양성에 힘을 썼다. 특히 손흥민을 어린 시절부터 전담해 개인 기술과 기본기 훈련만 시켰고,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패스, 슈팅, 전술 훈련을 따로 하지 않았다. 여기에 손흥민이 축구를 즐길 수 있게 했고, 탄탄한 기본기가 갖춰진 후 세상에 내보내 '팀 훈련'을 하게 했다.
아버지이자 스승인 손웅정의 열린 교육 속에서 손흥민은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선수로 성장했다. 아버지의 탁월한 스피드를 물려받았기에 성장세는 매우 빨랐고, 원주 육민관중학교 축구부를 거쳐 축구 명문 동북고등학교에 진한했다. 이후 동북고를 중퇴한 후 함부르크 유스 팀에 입단하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함부르크 내에서도 '최상급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2008년에는 한국 U-16 대표팀에 발탁됐고, 2009년에는 FIFA U-17 월드컵에 출전해 좋은 활약을 펼치며 국내에서도 '특급 유망주'로 불리기 시작했다.
# '전설' 뤼트 판 니스텔루이가 직접 후계자로 지목, '손세이셔널' 손흥민
2008년 함부르크 유스 팀에 입단한 손흥민의 성장세는 폭발적이었다. 함부르크 유스의 최고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았던 손흥민은 2010-11시즌을 앞두고 1군에 합류했고, 프리 시즌에서 무려 9경기에서 9골을 터뜨리며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다. 이때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공격수 뤼트 판 니스텔루이는 "손흥민은 마치 어렸을 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직접 후계자로 지목했고, 함부르크의 감독 및 코칭스태프로부터 엄청난 극찬을 받기도 했다.
프리 시즌에서 첼시를 상대로 당시 월드클래스 센터백으로 불렸던 존 테리와 히카르두 카르발류를 폭발적인 스피드로 제치며 골을 넣어 주목받았던 손흥민은 2개월 간 발가락 골절 부상에서 회복해 2010년 10월 프랑크푸르트와 포칼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이후 쾰른과의 리그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 풀타임 활약하며 데뷔골까지 터뜨렸다. 골키퍼까지 제친 환상적인 데뷔골로 함부르크는 축제의 분위기였고, "전설의 시작"이라는 표현으로 함부르크 역사상 최연소 득점 기록 경신을 축하해줬다.
2010년 11월 함부르크와 4년 재계약을 체결한 손흥민은 데뷔 시즌 15경기에서 3골을 터뜨리며 가능성을 남겼고, 11월 21일 하노버와 리그 경기에서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연소 멀티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두 번째 시즌에는 등번호를 15번으로 교체하며 확실한 입지를 보여줬고, 프리시즌에 무려 6경기에서 15골 1도움을 기록했다. 비록 정규 시즌에서는 30경기에 출전해 5골을 기록하며 조금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팀 내 입지는 계속 높아졌다.
손흥민에게 2012-13시즌은 최고의 시즌이었다. 도르트문트와 리그 4라운드에서 멀티골을 뽑아내며 '양봉업자'의 시작을 알렸고, 이후에도 확실한 주전 공격수 입지를 다지며 총 34경기에서 12골 2도움을 올리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이때 유럽 현지에서는 선풍적인 이라는 뜻의 영어 'Sensational'에 손흥민의 'SON'을 합쳐 'Sonsational'로 부르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손세이셔널'이라는 별명이 탄생했다. 여기에 손흥민은 2018년 함부르크 역대 베스트11에도 포함되며 구단의 역사를 새로 쓰기도 했다.
# 레버쿠젠 역대 최고 이적료! 차범근의 후계자가 된 손흥민
최고의 시즌을 보낸 손흥민을 향한 러브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토트넘, 리버풀, 도르트문트 등 빅 클럽들이 관심을 보인 상황에서 손흥민의 선택은 레버쿠젠이었다. 아무래도 주전 경쟁에 유리한 팀이었고, 레버쿠젠은 당시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인 1000만 유로를 지불하며 손흥민에게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번호 7번'을 선물했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 차범근의 진정한 후계자가 된 순간이었다. 과거 차범근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레버쿠젠에서 뛰며 UEFA컵 우승을 차지하는 등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구단의 레전드로 등극했는데 약 30년 만에 손흥민이 입단하면서 많은 기대를 받았다.
손흥민의 활약은 초반부터 인상적이었다. 2013년 8월 4부 리그 팀인 립슈타트와 포칼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데뷔전을 화려하게 장식했고, 프라이부르크와 분데스리가 개막전에서도 득점포를 가동하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결과적으로 손흥민은 레버쿠젠 데뷔 시즌에서 43경기에서 출전해 12골 7도움을 기록하며 1985-86시즌 차범근 이후 한국인 선수로는 두 번째로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두 번째 시즌도 인상적이었다. 레버쿠젠의 확실한 에이스로 자리 잡으며 총 42경기에서 17골 4도움을 터뜨렸고, 무엇보다 2014년 11월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 제니트를 상대로 멀티골을 뽑아내며 한국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멀티골을 성공한 선수로 남게 됐다. 이 활약으로 손흥민은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4라운드에서 베스트11에 선정되기도 했다.
# '월드클래스' 손흥민, 한국을 넘어 아시아 축구 역사를 새로 쓰다
레버쿠젠에서 맹활약하며 독일 무대를 정복한 손흥민은 2015년 8월, 당시 아시아 역대 최고 이적료인 3000만 유로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신흥 강호 토트넘 훗스퍼로 이적했다. 등번호는 7번. 그만큼 토트넘이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바로 토트넘에서 데뷔전을 치른 손흥민은 카라바흐와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1차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최고 평점을 받았고, 홈 데뷔전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이후 손흥민은 주전과 로테이션 멤버를 오가면서 총 40경기에 출전해 8골 6도움을 올리며 새로운 무대에 적응했다.
조금은 아쉬웠던 데뷔 시즌을 뒤로하고 손흥민은 두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독일 분데스리가 복귀설도 있었지만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손흥민의 잠재력을 믿었고, 결국 잔류했다. 이 선택은 신의 한수였고, 손흥민의 성장세는 폭발적이었다. 2016-17시즌 완벽하게 주전 자리를 꿰차며 47경기에서 21골 7도움을 기록했고, 아시아 최초로 EPL 이달의 선수상을 두 번(2016년 9월, 2017년 4월)이나 받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여기에 EPL 진출 후 총 29골을 성공시키며 박지성이 가지고 있었던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통산 골 기록을 넘어섰고, EPL 득점 랭킹 13위, EPL 공식 랭킹 15위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EPL 정상급 측면 공격수로 자리 잡은 손흥민의 활약상은 계속됐다. 2017-18시즌 '웸블리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으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총 53경기에 출전해 18골 11도움을 올리며 유럽 무대 진출이후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여기에 EPL 사무국에서 책정하는 랭킹과 득점 순위에서 10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 번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고, 무려 8번이나 경기 MOM을 차지하며 'EPL 톱클래스'라는 것을 증명했다.
2018-19시즌은 단순한 '톱클래스'가 아닌 '월드 클래스'라는 것을 증명한 시즌이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출전으로 시즌 초반 결장이 불가피했지만 한층 더 성장한 손흥민은 토트넘의 핵심이었다. 특히 해리 케인, 델레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센과 함께 'DESK 라인'으로 불리며 세계 최고의 공격진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 가운데 손흥민은 총 48경기에서 20골 9도움을 올리며 확실하게 월드클래스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EPL 이달의 골(2018년 11월), 런던 풋볼 어워즈 EPL 올해의 선수상, 토트넘 올해의 선수상과 올해의 골을 모두 받으며 최고의 시즌을 만들었다. 이미 영국 런던 현지에서도 '런던의 왕'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을 정도다.
2019-20시즌 손흥민은 한 단계 더 성장했다. 폭발적인 스피드, 파괴력 넘치는 슈팅, 상대를 무너뜨리는 드리블 기술, 순간적인 공격 침투, 다양한 슈팅 기술 등을 갖춘 손흥민이 이제는 찬스 메이킹까지 가능한 선수가 됐다. 손흥민은 2019-20시즌 경기당 1.4개의 키패스를 만들면서 동료들을 도와주는 플레이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고, 총 41경기를 뛰며 18골 12도움을 기록했다. EPL로 한정하면 10도움을 올렸고, 이는 리그 4위에 해당되는 엄청난 기록이다.
치명적인 골잡이에서 이제는 이타적인 플레이로 경기를 풀어가는 '플레이 메이커'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지현 해서위원은 "손흥민이 온 더 볼 상황에서 기술적인 능력도 발전했다. 크로스, 패스도 점점 세밀해지고 있다. 또한, 원 터치 패스로 동료들에게 찬스를 제공하는 능력이 정말 많이 발전했고, 전술적인 움직임도 좋아졌다. 스탯을 떠나 퍼포먼스가 뛰어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제 손흥민은 진정한 완성형 공격수로 진화했다.
# '울보 막내'에서 '위대한 캡틴'으로...한국 축구의 '리빙 레전드' 손흥민
2009년 U-17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유망주로 이름을 알린 손흥민은 2010년 12월 18세의 나이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됐고, 시리아전에서 A매치 데뷔했다. 이후 손흥민은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최종 명단에 포함됐고, 인도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후반에 투입돼 A매치 데뷔골을 신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만나 승부차기 접전 끝에 패배했고, 경기 후 손흥민은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이때부터 손흥민은 '울보'라는 별명이 붙었고, 어찌 보면 한국 축구 전설의 시작이었다.
손흥민의 존재감은 계속해서 커졌다. 최강희 감독 시절 이동국, 김신욱, 박주영 등 걸출한 공격수들이 활약하며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함부르크, 레버쿠젠을 거치면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기에 조금씩 출전 기회를 잡았다. 결국 2013년 3월 카타르와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기록하며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첫 번째 월드컵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손흥민과 함께 하지 못했지만 2년 사이 급성장한 손흥민을 중용했고, 러시아와 조별리그 1차전부터 기용했다. 러시아전에서 MOM을 받으며 기대를 모은 손흥민은 알제리와 2차전에서도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을 보여줬고, 결국 월드컵 첫 골까지 터뜨렸다. 그러나 팀은 대패를 당했고, 손흥민은 경기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결국 손흥민의 첫 번째 월드컵 벨기에전 패배로 막을 내렸고, 홍명보 감독의 품에서 대성통곡하는 모습이 잡히며 '울보 막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독일 무대를 평정한 손흥민은 대표팀에서도 '에이스'로 자리 잡았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손흥민을 확실하게 중용했다. 특히 2015년 호주 아시안컵에서는 등번호 7번을 받으며 맹활약을 펼쳤고, 대회에서 총 3골을 기록하며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2016 리우 올림픽에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에이스'의 품격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대표팀에서는 꾸준하게 활약하며 대체불가 선수로 자리 잡았다. 정점은 2018 러시아 월드컵이었다. 신태용 감독의 굳건한 믿음 속에서 두 번째 월드컵을 맞이한 손흥민은 어느새 대표팀의 기둥이 돼있었고, 스웨덴과 1차전은 아쉬웠지만 멕시코와 2차전에서는 득점포를 가동했다. 여기에 독일과 3차전에서는 기성용을 대신해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섰고, 후반 추가시간 주세종의 장거리 패스를 폭발적인 스피드로 쫓아가 득점을 만들며 '카잔의 기적'을 연출했다. 이후 '울보' 손흥민은 또 한 번 눈물을 흘렸지만 이번에는 슬픔이 아닌 기쁨의 눈물이었다.
'울보 막내'가 이제는 대표팀의 '위대한 캡틴'으로 성장했다. 특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와일드카드로 출전했고, 김학범호의 주장으로 선임됐다. 확 달라진 모습이었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는 골잡이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김학범호에서는 헌신하는 모습과 함께 팀 동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리더'의 모습이었다. 특히 동갑내기 공격수 황의조와 환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며 승승장구했고, 대회에서 총 1골 5도움을 기록하며 특급 도우미의 면모를 보여줬다. 결국 손흥민의 헌신으로 김학범호는 금메달을 목을 걸었고, 손흥민은 대표팀 커리어 처음으로 정상의 기쁨을 맛봤다. 이후 손흥민은 파울루 벤투 감독 체제에서도 '캡틴'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한국 축구의 리빙 레전드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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